![]() |
| ▲ |
한국은행이 지난 11월 11일 발표한 ‘진단적 기대를 반영한 주택시장 DSGE모형 구축 및 시사점’ 보고서에 의하면, 작년 하반기 이후 국내 경제 성장세는 둔화했지만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수도권 주택가격은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주체들은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해 행동한다. 이를테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정부가 돈줄을 옥죌 것으로 예측되면 부동산 시장은 미리부터 얼어붙는다. 그러나 ‘부동산 불패’로 상징되는 서울 집값은 이런 합리성이 통하지 않는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전망이 밝든 어둡든 서울 집값은 오를 것이라는 ‘진단적 기대(Diagnostic expectations)’가 팽배해 있어서다. 정권 성향이나 최근 주택가격 급등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 굳게 믿는 인식이 저변에 짙게 깔려있다. 집값 상승세가 전통적인 연구 방식인 합리적 기대 가설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주택가격이 하락 국면으로 전환되는 시기에도 경제주체들은 집값 상승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경제 주체가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경제 상황을 예측한다고 보는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 가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수도권 주택가격은 부진한 경제 성장세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주택 수요가 실제 경기 상황이나 전망과 괴리된 채 움직인 것이다. 합리적으론 설명이 어렵지만, 가격 상승 기대 심리는 부동산 시장의 최대 동인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지난 6월 가계부채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한 ‘6·27 대출 규제’와 9월 주택공급 확대 및 대출수요 관리 방안을 담은 ‘9·7 공급 대책’에 이어 현 정부가 출범 넉 달여 만에 세 번째로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선 경기 부양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이 우선이다. 지난달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면서 한국도 금리 인하 여력이 생겼다. 그러나 집값이 확실히 잡히기 전까지는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만 한다. 금리를 낮추면 요즘 1,450원을 넘나드는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28일 발표한 ‘2025년 10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전월(112)보다 10포인트 상승한 122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10월(125)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다. 6·27 대책과 10·15 대책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둔화세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한국은행 경제모형실 윤진운 조사역과 금융통화위원회실 이정혁 조사역 등 연구진은 경제주체들이 합리적 기대가 아닌 진단적 기대를 따른다고 가정하고 금리인하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진단적 기대란 경제주체가 과거의 긍정적 뉴스나 경험을 과도하게 회상해 미래에도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편향적 기대를 의미한다. 작년 하반기 이후 국내 경제 성장세는 둔화했지만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수도권 주택가격은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진단적 기대하에서는 기준금리 25bp(1bp=0.01%포인트) 인하 후 8분기(2년)가 지난 시점의 주택가격이 합리적 기대 모형과 비교해 56%나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합리적 기대 하에서 주택가격이 100이 오른다고 가정하면, 진단적 기대 하에서는 156이 오른다는 의미다. 반면 국내총생산(GDP)·투자·소비는 8~10% 정도 더 낮게 증가했다.
한편 대통령실이 ‘필사적 주택공급’을 주문하면서 부동산 정책의 중심이 공급 확대로 옮아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달 중 신설하는 주택공급 전담 관계 장관회의를 통해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와 공공 부지 활용 방안을 추진키로 하는 등 총력전에 들어갔다. 신도시 조성이나 군(軍) 부지 활용, 폐교 전환 등은 행정절차만 수개월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새 장관회의체를 통해 밀어붙이겠다는 접근은 만시지탄(晩時之歎)으로 늦기는 했어도 방향은 옳다고 본다. 문제는 조율의 정교함과 실행 의지다. ‘탑다운(Top-down │ 하향식)’ 구조가 되레 현장의 유연성을 막을 수도 있어서다. 특히 가장 큰 변수는 서울시다. 핵심 공급지의 인허가 권한을 쥔 서울시와의 협력이 없으면 정부 계획은 공염불이 된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신속 통합기획도 속도 면에서 한계가 있다. 국토교통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 구청 단위로 인허가 권한을 분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자칫 서울시와의 충돌로 행정 병목이 되레 심화할 수도 있다. 그린벨트 해제 역시 녹록지 않은 사안이다. 정부는 내년 초까지 3만 가구 규모의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해제 후보지를 확정할 계획이지만,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관련 부처와의 조율이 필요하다. 행정 혼선으로 사업이 표류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는 사안이다. 원칙과 속도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난제 중 난제이기 때문이다. 오직 국민만을 바라본 합리적 정책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부동산 정책은 일관성과 지속성이 특히 중요하다. 정부는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주체들의 비합리적인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잠재울 수 있다. 진단적 기대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이 과도하게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형성하지 않도록 주택시장 관련 대책들을 일관성을 견지하고 지속성 있게 추진해야만 한다. 집값 상승 기대가 과도하게 형성돼 있을 때 금리를 인하하면 성장 제고 효과는 크지 않고 집값 상승 폭만 커진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따라서 주택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완화할 때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 규제로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거시건전성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집값을 잡지 못하면 경제도 민생도 없다. 정부는 부동산 불로소득에 과세를 강화하고 약속한 대로 연말까지 구체적인 공급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차제에 합리적 기대가 통하는 곳으로 부동산 시장의 풍토를 바꾸어 일신(一新)해야만 한다.
[저작권자ⓒ 부산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